한화손해보험이 캐롯손해보험을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제시한 합병가액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에 기초한 합병가액이라는 시각이다. 지속된 적자에도 수익가치를 높게 평가한 근거가 불투명하다는 평가다.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화손보의 캐롯손보 합병 과정에서 산정된 캐롯손보의 주당 합병가액은 5071원이다. 주당 자산가치 2609원과 주당 수익가치 6712원을 1대1.5로 가중평균한 결과다.
해당 가격의 적정성을 평가한 신한회계법인의 합병가액 평가 밴드(4071~5499원)의 상단에 해당한다. 신한회계법인은 주당 자산가치는 2609원으로 동일하지만 주당 수익가치를 5046~7425원으로 평가했다.
합병가액을 끌어올린 핵심은 수익가치다. 신한회계법인은 주주잉여현금흐름법(FCFE)을 활용해 2025년부터 2032년까지 8년 간의 예상 현금흐름을 추정하고, 이후 기간은 영구현금흐름으로 가정해 수익가치를 산정했다. 산정에 필요한 8년간의 추정재무제표와 재무 정보는 캐롯손보가 제공했다.
FCFE는 당기순이익에서 감가상각비, 자본적지출(CAPEX) 및 영업용순자산과 이자부부채의 증감을 반영해 주주잉여현금흐름을 산출한 뒤 자기자본비용으로 할인해 주주에게 귀속되는 잉여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수익가치 산정이 실적과 괴리된 낙관적 가정에 근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캐롯손보는 2019년 출범 이후 단 한 해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연도별 순손실은 ▲2019년 91억원 ▲2020년 381억원 ▲2021년 650억원 ▲2022년 795억원 ▲2023년 760억원 ▲2024년 662억원이다. 누적 순손실은 3339억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이번 추정치에서는 장래 순손실이 ▲2025년 605억원 ▲2026년 310억원 ▲2027년 97억원으로 급감한 뒤 2028년부터는 흑자 전환(당기순이익 108억원)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영업수익이 6673억원에서 8105억원으로 급증하는 동안 영업비용이 700억원 남짓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다.
같은 기간 주주현금흐름도 2025년 마이너스(-) 2076억원에서 2028년 97억원으로 플러스 전환, 2032년에 952억원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한 보험회계 전문가는 "과거 적자가 계속됐더라도 사업성 평가시 미래 현금흐름을 다르게 볼 수는 있다"면서도 "미래 현금흐름 추정값이 직관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미 지배력이 있던 상황에서 합병이 실질적인 경제적 시너지를 얼마나 창출할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한 IB업계 전문가도 "미래 전망은 추정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쉽게 납득되는 숫자는 아니다"고 평했다.
신한회계법인 역시 평가보고서에서 수익가치 산정에 사용된 추정자료에 대해 진위 확인이나 외부 검증을 충분히 수행하지 않았고, 제시된 재무추정치가 실제 실적과 크게 다를 수 있다고 명시했다. 또 평가인이 해당 추정의 실현 가능성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합병가액 평가를 총괄한 신한회계법인 회계사는 “적자가 이어지던 상황에서 언제 흑자로 전환될지 주요 검토 사항이었으나, 온라인 보험사 특성상 자본적 지출이 일어난 후에는 설계사 수당 등이 따로 나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일정 시점 이후부터 현금 유입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합병은 소규모 합병에 해당한다. 소규모 합병은 존속회사가 합병으로 인해 발행하는 신주 또는 이전하는 자사주 총수가 존속회사 발행주식총수의 10%를 초과하지 않는 경우 존속회사가 주주총회 대신 이사회 결의만으로 합병을 진행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지난달 말 캐롯손보 외부 투자자들이 평균 7950원에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하면서 한화손보 보유 지분은 98.3%까지 상승했다. 이로 인해 합병가액으로 인한 지분이나 주당가치 희석 논란에선 비껴났다는 분석이다.
다만 합병가액이 실제보다 높게 산정된 경우 시장에 과도한 성장 기대를 반영한 잘못된 신호로 읽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예상만큼 수익성과 현금흐름이 따라오지 못할 경우 관련 지표 악화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한 회계 전문가는 "실현된 수익 없이 수익가치가 과대 산정된 경우 공정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 "소규모 합병이라도 합병가액 과대 산정은 경제적·회계적 측면에서 경영진의 판단 적정성에 대한 이슈로 불거질 수 있다"고 짚었다.
한편, 이번 합병 과정에서 회사가 비교 모델로 제시한 것은 미국 증시에 상정된 온라인 전용 보험사 레모네이드인 것으로 전해졌다. 레모네이드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3~4배 수준으로 캐롯손보의 높은 성장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례로 참조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