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초고가 희귀약품에 지원한 돈 보험사가 왜 떼’...법원, “위험분담금 공제 말라”
서울지법, 약관 작성자불이익 원칙에 해당...이득금지원칙은 적용 불가
“환자가 지급한 약값 그대로 보험금으로 지급하라”
김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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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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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씨는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주 치료를 받고 치료비 약 500만원을 병원에 지급했다. 이후 A씨는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국가에서 지원한 약제비 약 250만원을 공제하고 보험금을 지급했다. 이에 A씨는 소송을 진행, 법원은 보험사에 공제한 금액에 지연이자까지 더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암 등 희귀질환자가 보험사와 다툴 일이 줄어들 전망이다.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고가 신약 지원금에 대한 법원의 첫 판례가 나왔다. 법원은 제약사가 환자에게 지원한 돈을 보험사가 공제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지방법원은 최근 위험분담금(위험분담제, Risk Sharing Agreement) 관련 첫 번째 판결에서 실손보험 가입자 손을 들어줬다. 보험사는 그 동안 공제 후 지급했던 위험분담금을 전액 되돌려줘야 한다. 또 실손보험 가입자와 보험사와의 갈등도 줄어들 전망이다.
위험분담금은 환자가 일정 금액 이상의 의료비를 지출할 경우 제약사가 약값의 일부를 지원토록 하는 제도다. 초고가 신약의 효능⸱효과나 보험재정영향 등에 대한 불확실성(risk)을 제약회사가 일부 분담하는 동시에 대체재가 없는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 제고를 위해 도입했다.
가령 1회 처방에 500만원인 신약이 있다. 환자(실손보험 가입자) A씨는 먼저 500만원의 약값을 지불한다. 이후 제약사는 약값의 약 절반인 250만원을 위험분담금 명목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문제는 실손보험 청구 과정에서 발생했다. 실손보험은 실제 발생한 의료비를 지원하는 보험이다. 실제 약값이 500만원이 발생했으니 보험금으로 500만원을 돌려줘야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500만원 중 250만원을 돌려 받았으니 보험사가 250만원만 돌려주면 되는지가 문제가 됐다.
보험사는 A씨가 지급한 약값 500만원 중 절반인 250만원을 돌려 받았으니 실제 지급한 의료비는 250만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보험금도 250만원만 지급하면 된다는 것.
하지만 서울지법의 판단은 달랐다. 약값 전액인 500만원을 돌려주라고 한 것이다.
서울지법은 ‘작성자불이익원칙’을 먼저 언급했다. 약관이 다의적으로 해석될 때는 약관을 작성하지 않은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해석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손해보험 상품에 적용하는 ‘이득금지의원칙’도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위험분담제에 따른 환급금은 의료비분담금이 아니라고 해석한 것이다. 즉 실손보험 약관에 명시한 요양급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
실손보험은 요양급여에 해당 유무를 판단, 이득금지원칙을 적용한다. 그러나 위험분담금은 요양급여에 해당하지 않는 별도의 돈이기 때문에 이득금지원칙을 억지로 적용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최수영 법무법인 시공 변호사는 “제약사가 환자에게 지원한 위험분담금을 보험사가 실손보험금에서 공제할 이유가 없다”며 “만약 보험사가 위험분담금을 공제하고 보험금을 지급했다면 다시 다퉈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키트루다주 등 초고가 신약은 많게는 수십번 반복 처방된다. 이에 약값은 물론 공제금액도 수천만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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