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진 암초 걸린 푸본현대생명, 퇴직연금 유치전 후폭풍

운용수익률 제고에 재무건전성 개선까지...겹겹이 쌓인 난제

여지훈 승인 2023.04.26 11:14 | 최종 수정 2023.04.26 15:36 의견 0

푸본현대생명보험이 지난해 말 퇴직연금 금리 경쟁 여파로 역마진 위험에 빠졌다. 높은 확정 이자율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투자 적기를 놓쳤다는 분석이다.

[사진=푸본현대생명]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따르면 푸본현대생명의 지난해 말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 자산 중 일반계정미수금 규모는 1조1090억원이다. 일반계정미수금은 적립된 퇴직연금 중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금액을 일시적으로 쌓아둔 계정이다.

보험사의 퇴직연금 자산은 다른 보험계약 자산과 구분을 위해 특별계정으로 운용된다. 이 중 투자처가 정해지지 않은 금액이 일반계정미수금으로 계상된다. 지난해 말 일반계정미수금 규모가 불어난 것은 연말 퇴직연금 갱신기를 맞아 과다경쟁에 뛰어든 결과다.

즉 일반계정미수금이 증가한 것은 지난해 말 퇴직연금 계정으로 들어온 돈이 아직 자산시장에서 투자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12월 푸본현대생명이 제시한 만기 1년 확정급여형(DB형)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 상품(이율보증형) 금리는 6.6%.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퇴직연금에 특화된 사업구조를 지닌 푸본현대생명이 기존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고금리 상품을 선보였다는 게 업계 내부의 시각이다.

푸본현대생명의 퇴직연금 수입보험료는 지난해 전체 수입보험료의 53.0%를 차지했다. 퇴직연금 특화 보험사인 셈. 퇴직연금 계약자적립금은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에 이어 업계 3위, 시장 점유율(수입보험료 기준)도 8.5%에 달한다. 한때 현대차그룹 소속으로 계열사의 퇴직연금을 적극 수주한 게 주효했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지난해 말 시중금리가 급등하자 증권사를 중심으로 퇴직연금 유치 경쟁이 치열해졌다. 키움증권은 8.25%, 다올투자증권은 8.5% 금리를 적용하는 원리금보장형 상품도 내놨다.

이에 푸본현대생명도 생보업계 최고 수준인 6.6%로 적용 금리를 올렸다. 그럼에도 퇴직연금 자산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지난해 푸본현대생명의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 계약자적립금은 전년도 대비 1조2600억원가량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6%대 상품마저 출시하지 않았다면 기존 가입자 이탈이 더욱 심화했을 것으로 본다.

문제가 커진 건 시장 금리가 내림세를 보이면서다. 푸본현대생명의 퇴직연금은 대부분 원리금보장형 상품이다. 자산운용 결과 손실이 발생하면 약속한 원리금 지급을 위해 보험사가 손실을 보전해야 한다.

지난해 말 6.6% 상품에 가입한 계약자들에 고금리를 지급하기 위해선 자산 운용에서 높은 수익률을 거둬야 한다. 하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확보하지 못한 금액이 1조1090억원.

채권 금리도 꾸준히 낮아졌다. 국내 3년 만기 회사채(AA-) 금리는 지난해 11월 5.49%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하락세를 지속 중이다. 지난달에는 4.18%까지 떨어졌다. 다른 채권 금리 역시 마찬가지다. 투자처를 찾았더라도 운용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퇴직연금의 부채부담 이율이 자산운용수익률을 웃도는 역마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은 요구자본 적립 대상이다. 과거에는 운영리스크에 따른 요구자본만 반영했지만, 올해 신지급여력제도(K-ICS) 시행으로 신용리스크와 시장리스크에 따른 요구자본도 반영하게 됐다. 퇴직연금 적립액이 늘어날수록 보험사는 재무건전성 개선을 위한 자본 확충이 시급해진다.

보험업계 한 회계 전문가는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금리 6.6%를 제공하기 위해 푸본현대생명은 더 높은 투자수익을 올려야 이차손이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일반계정미수금이 확대된 것을 보면, 아직 제대로 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조원이 넘는 돈을 운용하지 못한 기회비용 손실은 자산운용수익률 악화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뉴스포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