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심평원 정보 빼내면 인센 10만원"...보험사의 '도 넘은' 민감정보 수집

현대해상·KB손보·메리츠화재·KDB생명 등...현장조사자에게 추가 지급
심평원 '건강e음' 앱 악용...진료기록 열람 건수 1년새 10배 증가

여지훈 승인 2023.12.28 14:15 | 최종 수정 2023.12.28 18:47 의견 0

보험사의 개인 진료기록 수집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보험금 지급심사를 위해 활동하는 현장조사자가 가입자의 진료기록을 빼내와 제출하면 보험사가 추가 비용을 지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진료기록 열람에 동의하도록 요구하고 가입자가 이를 거절하면 보험금 지급을 무기한 지연하는 사례도 급증하는 분위기다. 보험금을 제때 받기 위해 가입자는 청구한 보험금과 무관한 진료기록까지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다.

2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다수의 생명·손해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심사시 심평원 진료정보를 확보한 현장조사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보험사는 ▲DB손보▲메리츠화재▲KB손보▲현대해상▲한화손보▲흥국화재▲롯데손보▲MG손보▲KDB생명 등이다. 업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고 현장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현장조사자가 심평원 진료정보를 고객으로부터 받아오면 기존 손해사정료에 3만~10만원의 웃돈을 주는 식이다.

[사진=보험연수원]

통상 보험사는 손해사정업체에 보험금 지급심사를 위탁한다. 대부분 서면심사로 끝나지만 보험금 액수가 크거나 고지의무 위반 등이 의심되면 현장조사를 진행한다. 손해사정인이 보험 가입자로부터 위임장을 받고 주변의 병의원을 탐문하는 것이다.

심평원 진료기록을 확보하면 진단명을 확인한 뒤 병의원에 가서 의무기록지를 발급받으면 절차가 간편해진다. 보험사가 추가 수당을 지급하면 조사자의 진료정보 확보 유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심평원에서는 최대 5년치 진료내역 확인이 가능하다.

보험사가 손해사정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심평원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도 급증하는 추세로 전해졌다. 현장조사자에게 나가는 비용마저 줄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 보험설계사는 "고객이 심평원 정보 열람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보험사가 겁박하고 있다"면서 "처음에는 일부 보험사만 그랬지만 지금은 대부분 보험사가 동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평원은 지난해 8월부터 어플리케이션(건강e음)을 통해 '내 진료정보 열람'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건강e음을 통한 진료정보 열람 건수는 지난해 5개월간 32만9000건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선 약 320만건까지 급증했다. 보험사가 고객 진료정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최근 부쩍 늘어난 것도 그만큼 열람이 쉬워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행 보험약관에 따르면 보험금 지급심사시 계약자(또는 피보험자, 수익자)는 의료기관,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찰서 등 관공서에 대한 보험사의 조사요청에 동의해야 한다. 보험사가 심평원 정보를 요청하며 근거로 내세우는 것도 이 문구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절하면 사실 확인이 끝날 때까지 보험금 지급 지연에 따른 이자를 지급받지 못한다.

보험금 지급을 미뤄도 이자 부담이 없다면 보험사로선 급할 게 없다. 보험금 지급 지연을 고객 탓으로 돌리며 손해율 개선 효과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

문제는 진료정보 열람 서비스가 당초 정보주체 본인 확인용이라는 데 있다. 심평원은 진료정보가 보험사 등에 제출되는 증빙자료로 활용될 수 없다고 안내하고 있다. 그만큼 제3자의 접근과 이용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심평원 정보 열람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지연한 보험사에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본래라면 접근하기 어려운 개인정보를 고객이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미루는 건 부당하다는 시각이다.

한 손해사정업체 관계자는 "고지의무 위반에 대한 입증 책임은 보험사에 있다"면서 "고객이 진료정보 요청을 거절했다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라도 다른 방법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대부분 보험사가 이를 외면한 채 고객만 닦달하고 있다"며 "책무 이행 없이 보험금 지급을 미루는 보험사에는 지연에 따른 이자 등 패널티를 부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만 이를 위해선 표준약관 개정이 필요하다. 현행 표준약관이 보험사의 지급심사와 관련해 포괄적으로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고지의무 관련 사항을 상세히 규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매년 소비자단체와 보험사 등 다양한 채널로부터 표준약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소비자단체로부터 의견이 나올 경우 이를 표준약관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어느 채널로부터도 지급심사와 관련된 의견을 듣진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보험사들이 심평원 정보를 요구한 배경에는 고지의무 위반에 따른 계약 해지 부담이 과거 대비 감소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한 보상 전문가는 "과거엔 고지의무 위반시 보험사가 기납입 보험료를 전부 돌려주고 계약을 해지했지만 지금은 소정의 해약환급금만 지급하면 된다"며 "부담이 완화되면서 고지의무 위반을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한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일단 계약을 인수해 보험료를 받아오다가 보험금이 청구되고 나서야 고지의무 위반을 탐지하겠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