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자금 투입 대신 급매"...ABL생명 매각 이슈 배경은?

건전성 유지 위해 ‘5000억’ 유상증자 압박...인수자에게 부담 이전

여지훈 승인 2023.04.24 14:13 의견 0

“유상증자로 추가 자금이 들어가는 것 대신 헐값매각을 택한 거죠.”

보험업계에 정통한 IB(투자은행) 전문가의 말이다. 그는 ABL생명의 대주주인 다자보험그룹이 추가 증자 대신 빠른 매각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했다. 다만 매물로서 매력이 높지 않아 원매자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사진=여지훈 기자]

최근 매각 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CS)가 ABL생명의 기업가치 평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거론되는 매각가격은 3000억~4000억원. 지분 전부를 인수할 복수의 원매자와 접촉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인수합병(M&A) 시장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IB 관계자는 “M&A 시장에선 노이즈 발생을 목적으로 잠재 매수자에 대한 소문을 흘리거나 가격을 부풀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충분한 자금력과 인수 의도를 갖춘 진성 매수자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라고 꼬집었다. 이어 “신지급여력제도(K-ICS, 킥스) 시행 후 주어진 유예기간 동안 ABL생명은 큰 증자 압박에 시달릴 것”이라며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추후 4000~5000억원 규모의 증자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재무건전성 개선을 위해 채권 발행에도 나섰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ABL생명은 지난달 7일 콜옵션(중도상환권)이 부여된 7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권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나섰다. 당초 제시한 공모 희망금리는 6.0~6.6%. 그러나 흥행은 완전히 실패했다. 국내외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전무했던 것. 결국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이 공모 희망금리 상단인 6.6%를 적용해 1300억원 규모의 채권을 총액인수하는 방식으로 발행됐다.

ABL생명은 채권 발행 목적을 지급여력비율 개선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6%가 넘는 고금리를 제시했음에도 불구, 투자자로부터 외면받은 전례를 남긴 만큼 향후 회사의 자본 확충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K-ICS 아래서 후순위채는 손실흡수성이 제한되는 보완자본으로 분류된다. 기본자본(자본금, 이익잉여금)과 마찬가지로 지급여력비율을 높이는 가용자본이지만, 요구자본의 50% 한도 내에서만 인정된다. 후순위채의 막대한 이자 비용도 큰 부담이다.

ABL생명의 매력이 이처럼 떨어진 이유는 뭘까.

ABL생명이 독일 알리안츠그룹으로부터 중국 다자보험그룹(구 안방보험그룹)에 편입된 건 2016년. ABL생명은 이후 체질 개선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왔다. 과거 알리안츠생명 당시 특화한 저축성보험을 줄이고 보장성보험 판매를 늘린 것.

이에 수입보험료 중 보장성보험의 비중은 2017년 말 19.5%에서 지난해 말 48.5%까지 확대됐다. 2019년에는 자회사형 보험법인판매대리점(GA)인 ABA금융서비스도 출범시켰다. 자체적인 GA 판매력 강화를 위해서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2017년 말 0.44%였던 자기자본수익률(ROE)은 지난해 말 1.02%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총자산수익률(ROA)도 같은 기간 0.01%에서 0.06%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업계 평균 ROA(0.38%)를 한참 밑돈다. ROE와 ROA는 각각 자본과 자산 운용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시장점유율(수입보험료 기준)도 지난해 말 2.0%로 2017년 말(2.8%)보다 도리어 감소했다.

불완전판매비율(변액보험 제외)은 지난해 말 0.17%. 업계 평균(0.07%)을 훨씬 웃돌았다. 불완전판매비율은 신계약 중 소비자가 중요사항을 못 듣거나 판매 과정에서의 문제로 해지 또는 무효가 된 건수의 비율이다. 값이 클수록 소비자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해석된다. ABL생명의 계약관리 능력이 그만큼 뒤처진다는 방증이다. 장기 영업 안정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국내 금융지주사의 인수전 참여 가능성이 제기된다. 비은행 계열사를 갖추지 못한 우리금융이나 그룹 전체에서 보험사 비중이 약소한 하나금융이 물망에 오른다. 다만 미래 증자 부담이 큰 점을 고려하면 일부 공격적인 사모펀드가 뛰어들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점쳐진다. 국내 사모펀드 중 대규모 증자에 대응할 만큼 역량 있는 펀드는 그리 많지 않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 ABL생명 외에도 다수의 보험사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금융지주사가 ABL생명을 인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짚었다. 이어 “금융지주사로서는 차라리 증자 부담이 없는 동양생명을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다자보험그룹이 동양생명을 매각하면 ABL생명에 대한 수요가 없어질 것으로 판단해 우선 매각하려는 것”으로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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